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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왕 제26대왕 고종

by MIJINY 202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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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의 제26대 왕이자 마지막 황제입니다. 고종황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입니다. 1863년 12월 7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조대비(신정왕후)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종이 즉위하기 전인 1864년 1월 21일 명성황후 민씨가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청나라는 조선 정부 내에서의 권력 다툼을 이용하여 이권 침탈을 꾀하였습니다. 특히 청나라 세력을 등에 업은 대원군은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젊은 관료들을 탄압하였고, 이로 인해 임오군란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갑신정변 때 다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본군에게 경복궁을 점령당하고 맙니다. 결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가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일제로부터 강제 퇴위당한 후 순종이 등극하면서 창덕궁에 머물다 1919년 1월 21일 사망하셨습니다.

 

고종황제는 어떤 사람인가

고종황제는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집권 초반 10년간 쇄국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개방 정책을 추구하였던 형 이재면 대신 친청파인 자신이 후계자가 되자 대외개방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6개국 특명전권공사를 임명하여 외국 문물을 수용하려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양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느낀 나머지 강력한 국방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를 위해 군사제도 개편 및 군비 확충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식군대 별기군을 창설하였는데, 구식군인들이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키자 진압과정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고종황제는 왜 폐위되었나

1897년 2월 25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함으로써 자주독립국가임을 대내외에 선포하였습니다. 광무개혁을 단행하여 근대 국가 체제를 갖추려고 하였으나, 열강의 간섭과 재정난으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게다가 을미사변 직후 친일내각이 성립되고 단발령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했으며, 독립협회에서는 개혁 요구 시위를 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일전쟁 중이던 1904년 8월 22일 한일의정서 체결, 같은 해 9월 5일 제1차 한일협약 체결,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등 일련의 조약체결로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통감정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순종에게 양위한 후 덕수궁에 거처하다가 1919년 1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종황제 업적

고종황제께서는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이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셨다가 환궁하셔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정하셨습니다. 또한 근대 국가로의 개혁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는데, 먼저 상공업 진흥정책을 실시해서 회사령을 폐지하고 관세제도를 개편했습니다. 그리고 양전사업 및 지계발급 사업을 시행하셨고 교육입국조서를 반포하며 인재양성에 힘썼습니다. 교육입국조서 반포: 한국인들에게도 의무교육 실시하도록 하였다. 환구단 건립: 황제 즉위식 거행 장소로 황궁우, 석고단 설치하였다. 이밖에도 단발령시행, 태양력사용, 우편업무개시, 전화개통등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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