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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를 무너뜨리다

by MIJINY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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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단지동맹과 하얼빈역에서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등 많은 업적을 남기신 영웅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알려진 건 불과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최근엔 일본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더욱더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안중근 의사 성장기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명은 응칠(應七)이고, 본관은 순흥이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였습니다. 1904년 홀로 평양에 가서 석탄상을 경영하다가 이듬해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했습니다. 그러나 국운이 극도로 기울자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1907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습니다. 이후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웠고, 노에프스키에서 한인신문인 대동공보를 발간하였으며,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어떤 일을 했나?

안중근의 대표적인 업적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일제에 대한 반감과 민족적 자각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러시아 제국의 도시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열차가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6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한 발의 총성 후 잠시 정적이 흘렀고, 두 번째 총성이 울리자 기차 안에서는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총성과 함께 쓰러진 사람은 다름 아닌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였습니다. 이토히로부미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국무총리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대한민국 지배를 주도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과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조선인들에게 차별과 학살을 가하였습니다. 당시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 한국침략의 상징물이던 이토 히로부미가 죽자 국내외 각지에서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고, 일제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군대를 동원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체포되어 1910년 3월 26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안중근의사는 조선인들의 영웅으로 기억되며, 그의 희생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한 큰 희생이 되었습니다. 이토히로부미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대한민국 지배를 주도하며, 조선인들에게 차별과 학살을 가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일본의 조선인들에 대한 압박과 차별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나?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 위치한 뤼순 감옥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매장지 부근에 비석과 표지석이 남아있어 그곳이 무덤임을 짐작할 수 있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 발굴작업이 쉽지 않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에서도 추모행사가 열렸지만 공식적으로 유해발굴 작업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8월 14일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추진단’이 발족되었고, 2006년 5월 15일 첫 삽을 떠서 2008년 1월 13일 봉환식을 거행하면서 비로소 유해발굴 사업이 재개되었습니다. 2010년 7월 25일 남북공동조사단이 북한 지역 내 공동유해발굴 조사를 위해 방북했으나 기상악화로 중단되었으며, 2011년 12월 17일 다시 방북하였으나 역시 기상악화로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2014년 11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북측과 합의하에 남측 단독으로 재방북하여 2015년 3월 31일 귀환함으로써 마침내 유해발굴사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독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그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함께 기억되어야 합니다. 또한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을 잊지 말고 기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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