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란 정확히 어떤 전쟁인가?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왜군이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입니다. 1차 침입 때는 부산진성·동래성 등이 함락되고, 이어 세 방향에서 협공을 가하면서 서울을 위협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의 원병과 의병의 활약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군은 결국 철수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과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두 나라 사이에서는 국교가 단절되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은 붕괴되었습니다.
왜란 당시 상황은 어땠나?
당시 조정은 당파 싸움에만 몰두하였고, 국방 문제보다는 정치싸움에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양반 계급 내부에서도 서로 반목하며 붕당정치가 심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웠고, 군사 훈련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군역제도는 문란해져 병역을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일부 지방관들은 백성들을 착취했고,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오랜 평화로 인해 국가 재정은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이순신의 활약과 거북선
임진왜란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코 이순신 장군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자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장군은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들을 물리친 위인입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첫 전투인 옥포해전에서부터 한산대첩, 명량대첩 등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도 합니다.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일본수군에게 연전연패하던 조선수군은 전쟁 초반 판옥선만으로 일본군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선조는 새로운 함선을 개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오랜 연구 끝에 나무판자 위에 쇠못을 박아 만든 거대한 방패 모양의 덮개를 씌운 후 창칼과 송곳을 꽂아 적들이 뛰어오르지 못하게 한 다음 화포를 쏘고 대포알을 쏘는 방식의 돌격용 전선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설계도로 그려 조정에 보고했고, 마침내 16세기 후반 완성되어 실전 배치되었습니다.
일본에게 어떻게 승리했나?
1592년 4월 13일 새벽,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제1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정발 장군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이 무너지고, 동래부사 송상현이 지키던 동래성마저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경상좌병사 이각은 경주부윤 박진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때 관군과는 달리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 있던 울산군수 박홍은 언양현감 김응서와 함께 병력 500명을 이끌고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옥포 앞바다에서 적선 40여 척을 격파하였으며, 사천에서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5월 29일에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 전법으로 적의 함대 70여 척을 궤멸시켰습니다. 6월 7일에는 여수 좌수영 본영 앞바다에서 도망가는 적을 공격하여 100여 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해안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한 이순신은 서해안을 거쳐 북상하려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견내량에 정박 중이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한산대첩입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조선은 군사력과 외교력,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발전해 나갔습니다.